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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by 조 남주

2020. 4. 22. 16:59책읽은후 글쓰기(books)

82년생 김지영 by 조 남주

김 지영은 34살, 남편 정 대현은 37살이다.

둘은 같은 대학 등산 동아리 선후배 사이다.

한창 홍보회사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있던 지영은 아이를 임신 후 직장을 그만둔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아이를 기관에 맞기거나  육아 도우미를 불러 맡기기에는 경제적으로도 쉽지 않았다.

모성애만 한 것이 없다는 주위의 말로 엄마인  지영이 그만두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딸 지원이가 돌이 막 지난 후부 터는 단지 내 1층 어린이 집에 오전만 보낸다.

컴퓨터 계열 회사에 다니는 남편은 밤 12시가 다 되어 퇴근하고, 주말에도 하루는 출근한다.

결국 육아는 지영의 몫이다.

육아로 지쳐있는지 가끔 정신을 놓거나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녀는 원래 밝고 잘 웃는 성격이었다.

 

그러나 요새 와서 남편인 대현은 지영의 이상 징후를 목격하게 된다.

장모님처럼 말하고 자기가 여자 선배 차승연이라고 한다.

추석명절에 시댁에 내려간 지영은 시어머니와 장을 보고 밥을 하고 설거지하고 음식을 장만한다.

시누이가 도착한후 힘이 드시니 더 이상 음식은 하시지 마시고 사 와서 준비하자고 하니 시어머니는 섭섭해하신다.

며느리에게 "너 힘드니"? 물었더니 지영이 아닌 장모님처럼 "우리 지영이 요새 힘들어요"

모든 가족들이 아무말도 못 하고 있으니 남편인 대현이 말한다.

"요새 지영이가 좀 아파요"하며 서둘러 서울로 출발한다.

대현은 정신과에 찾아가 아내의 상태를 말하고 치료방법을 상의한다.

지영은 매사에 의욕이 없어 육아 우울증인가 생각했다며 고마워한다.

 

지영은 공무원인 아버지, 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위로는 언니, 아래로는 그렇게 할머니가 바라시던 남동생 이렇게 삼 남매다.

할머니와 부모님, 삼 남매가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17년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남동생은 소중하고 귀한 아들이라 모양이 온전한 반찬은 모두 동생 입에, 부서진 조각들은 언니와 지영이 먹는 것이 당연했다.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들이 있어야 한다고.

남동생이 태어나기 전 엄마는 동생을 가졌었다. 의사 선생님이 딸일 것 같다는 말에 슬쩍 남편에게 떠보았더니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소리만 듣게 된다. 결국 여동생을 지웠다.

1980년대 내내 이런 분위기여서 1990년대 초 성비 불균형의 정점을 찍었다.

몇 년 후 남동생이 태어났다.

부업일에 손재주가 있었던 엄마는 서른다섯에 미용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동네 아이들과 할머니 대상이었다.

입소문이 났다.

어머니는 국민학교를 마치고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청계천 방직 공작에 언니와 다녔다.

그 돈으로 오빠, 남동생들 학교 가는데 학비로 보내줬다.

다들 번듯한 직장을 가지게 되었다. 엄마와 이모는 자신의 인생을 희생한 것이다.

누구도 자신들을 위해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결국 깨달았다.

 

지영은 국민학교 시절 남자 짝꿍으로부터 심한 괴롭힘을 당한다.

선생님이 그 아이가 너를 좋아해서 그러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정작 지영은 학교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좋아한다면 친절해야 하는 거 아닌가?

급식시간에 밥을 늦게 먹는다는 이유로 혼나야 했다.

번호 순서대로 배식을 하니 뒷번호는 늦게 먹을 수밖에 없다.

왜 남학생부터 번호를 매기고 남자가 1번인지 그때는 몰랐다.

반장선거를 하면 꼭 남자가 뽑혔다.

학교 앞에는 꼭 바바리맨이 있었다.

 

지영은 서울 소재의 한 대학 인문학부에 합격했다.
2000년대 대학 등록금은 물가 상승률보다 배이상 올라있었다.
친구들은 아르바이트를 해도 등록금을 감당하기 힘들어했다.
부모님 집에서 학자금 대출 없이 생활하는 지영의 대학생활은 윤택한 편이었다.

동아리에서도 회장, 부회장, 총무는 모두 남자들이 했다.

 

지영은 홍보와 마케팅 쪽으로 진로를 정하고 알아보고 있었다.

비슷한 조건이라면 남성 지원자를 선호한다는 대답이 44%였다.

그 과정에서 교수들은 군대를 갔다 온 것에 대한 보상이 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는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부담스러워한다고 

출산한 여자가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경우도 2009년에야 절반을 넘었다.

지영은 막막했다.

택시를 타거나 회사 면접을 보러 갈 때도 여자라는 이유로 가끔 당황스러운 말을 들어야 했다.

옷차림에 대한 저속한 농담을 들었고 외모에 대한 지적을 들어야 했다.

지영은 어떤 상황에서도 큰소리로 하고 싶던 말을 하지 않았다.

혼자 거울을 보며 하고 싶던 말들을 쏟아냈지만 시원해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말하지 않는 법을 선택한 건 아니었다.

말을 해도 상황이 변하지 않거나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점점 목소리를 잃어갔다.

그러나 그 주변에는 도와주는 여성들이 한둘은 있었다. 소수의 여성들은 목소리를 낸다.

 

한 홍보회사에서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팀장에게 글을 잘 쓴다는 칭찬도 들었다.

회사에서 기획팀 인력을 뽑을 때 지영은 기대를 했지만 남자 동기 두 사람이 기획팀으로 가게 되었다.

예전과 다름없이 주어진 일을 했지만 열정과 신뢰는 흐려졌다.

 

대한민국은 여성이 일하기 힘든 나라로 뽑혔다.

또한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지영은 끊어질 것 같은 허리를 손으로 잡고 지하철에 서있다.

서있는 것만으로도 불편해하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속상해졌다.

어떤 아가씨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배속의 아이가 딸이라는 걸 아는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지영은 아기를 안은채 집안일을 하고 화장실을 가고 잠을 자야 했다.

왜 어머니는  한 번도 힘들다고 얘기하지 않았을까 

그 누구도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

 

의사는 지영에게 항우울제와 수면제를 처방했다.

지영은 회복될수 있을까?

 

주인공인 지영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우리 어머니들이 될 수도 있고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어머니들은  대부분 이런 인생을 사셨다.

결혼 후 부업을 하거나 악착같이 생계를 꾸리고 아이들을 키웠다.

어린 시절, 학창 시절, 회사 시절, 결혼생활 너무나 익숙한 경험들이다.

나보다 훨씬 어린 지영이 나 때와도 별다르지 않은 경험을 했다는 부분에서

많이 놀라고 앞으로는 이러한 환경들이 나아졌으면 하고 바라본다.